외국어를 빨리 배우려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원어민과 사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하려면 열정을 가지고 언어를 빨리 배워야 하니까요. 사랑이라는 동기가 생기면 못하던 말도 배우고, 몰랐던 능력도 발견하게 되는 걸 보면 연애는 단순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연애는 발달장애인에게도 아주 많은 일을 경험할 수 있는 도전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백정연(소소한소통 대표)
연애라는 두 글자만 봐도 마음이 몽글해진다. 그리고 그 설렒을 누구보다 간절히 궁금해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있다. 소소한소통이 만난 많은 발달장애인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저도 연애하고 싶어요." 이 말에는 단순한 이성에 대한 호기심만 담겨 있지 않다.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갈망과, 정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무력감이 함께 담겨 있다. 우리는 이 간절한 마음에 응답하고자, 쉬운정보 제작 전문 기관으로서의 노하우를 살려 <쉽지 - 연애편>을 만들었다. 연애의 시작부터 매너, 마음을 전하는 방법, 데이트 준비, 이별까지 글로라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진행된 감수회의 중, 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던진 푸념은 내 마음을 툭 건드렸다. “이런 게 있으면 뭐 해요. 만날 기회가 없는데.” 쉬운정보의 본질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진짜 좋은 정보란,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당사자의 실제 경험으로 이어져 삶의 지평을 넓힐 때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연애할 기회가 없다면, 직접 만들어보자. 그렇게 우리는 소개팅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사실 시작 전에는 걱정이 앞섰다. 매칭이 되지 않아 상처를 받지는 않을지, 관계가 끝난 뒤의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지는 않을지.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발달장애인만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닌데 발달장애인만 참여하는 소개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떨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관계를 어떻게 맺고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건강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스킨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역시 중요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소개팅 현장은 우리의 기우와 달랐다. 당사자들은 누구보다 진지했고, 그 긴장되는 순간 자체를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 앉아 흐르는 어색한 침묵,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슴 졸이던 서툰 대화들. 비장애인에게는 성인이 되며 자연스럽게 겪는 통과의례 같은 일들이, 이들에게는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 감당해내는 ‘눈부신 도전’이었다.
연애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기회의 부재로 인해 누리지 못하는 여러 경험 중 하나일 뿐이지만, 연애로부터 더 다양한 경험이 파생된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고,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 연습도 하게 되고, 옷차림을 선택하거나 데이트 코스를 정하는 등 자기결정의 순간을 겪기도 한다. 연애 자체가 발달장애인에게는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총체적인 도전의 경험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방영된 SBS <몽글상담소>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소개팅 장소까지 지하철을 타고 혼자 이동하는 것이 독립의 시작이었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관계를 배우는 첫 경험이었다. 결국 소개팅은 단순히 짝을 찾는 자리를 넘어, 이동과 독립, 소통이라는 삶의 핵심 요소를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해보는 자기결정의 장이었다. 우리 사회는 연애를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로 여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 연애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부재한 기회의 문제다. 많은 발달장애인이 쉬운 정보를 접하기 전에는 무엇이 어려운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알지 못한 채 주변에 의지하며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본 사람은 달라진다. 스스로 이해하고 선택해 본 경험은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그 자신감은 다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
소소한소통이 소개팅 프로그램을 몇 차례 이어오며 확신하게 된 한 가지가 있다. 연애는 책으로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직접 부딪히고 때로는 실패하며 배워가는 살아있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실패할 권리, 이별할 권리, 그리고 다시 사랑을 꿈꿀 권리까지도 이들에게는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당신의 첫 연애는 언제인가?” 이 질문 앞에서 기회의 부족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아니라, “몇 살 때였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해보니까 저는 연애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라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많이 사랑하고, 때로는 아프게 이별해보기를 권한다. 그 수많은 경험의 조각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행복한지, 나에게 연애와 결혼은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발견해가는 과정이야말로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소한소통은 앞으로도 발달장애인의 삶이 종이 위의 글자로 머무르지 않고, 다채로운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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