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소통은 ‘쉬운정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쉬운정보를 만들 때 적용했던 기준과 원칙을 체계화한 문서예요. 그 양이 무척이나 방대합니다.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은, 정확한 계량이 아니라 손맛이나 감각에 의존해서 만들던 요리의 레시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쉬운정보에 대한 기준이나 원칙은, 많은 제작 경험을 거치며 소소 내부에서 ‘체화된 감각’으로 자리잡았는데요. 물론 내부에도 쉬운정보를 만드는 기준은 있지만 정보의 형태나 종류, 독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하나의 기준 이상으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했어요. 그래서 흩어져서 존재하던 내부의 기준을 꺼내어, 구체화된 원칙으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체화된 감각을 원칙으로 만드는 일
주명희(소소한소통 총괄본부장) 우리가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해온 일일수록 더 그렇다. 어떤 일을 처음할 때는 하나하나 이유를 묻고 확인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고민이나 판단의 과정은 점점 짧아진다. 무엇이 어색한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져버린 그 일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씩 설명해보라고 하면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소소한소통이 쉬운정보를 만드는 일도 그랬다. 우리는 9년 넘게 공공기관의 안내문과 신청서, 교육자료, 매뉴얼, 전시 해설 등 다양한 정보를 쉽게 만들어왔다. 어떻게 하면 정보가 더 쉬워지는 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잘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 사실이, 쉬운정보가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암묵지라는 우리의 기준
소소한소통은 쉬운정보를 어떻게 제작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그동안 다양하게 정리해왔다. 창립 4주년인 2022년에는 「쉬운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라는 단행본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쉬운정보가 무엇인지와 제작 단계별 지침을 담았다. 내부적으로는 매뉴얼처럼 구축한 실무 제작 가이드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해 왔고, 구성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자료나 피드백 데이터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아카이빙되어 있다. 또 외부에 쉬운정보를 알리고 교육하는 일도 꾸준히 해왔다. 쉬운정보를 의뢰한 곳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왜 이렇게 만들어야 쉬운지, 무엇이 쉬운정보에 가까운지 설명하는 일은 1300건 이상의 자료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설명은 점점 구체화되고 체계화되었으며, 설명을 위한 지식은 더 깊고 넓어졌다. 그것은 우리에게 축적된 전문성, 자산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전문성을 언어로 설명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제 효용성 있는 자산으로 정교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무엇이 쉬운정보인가, 어떻게 해야 더 쉬운가에 대한 세부 기준은 때로 아는 사람만 아는 암묵지였다. 여전히 사람과 프로젝트에 따라 새롭게 적용해야 하는 부분들이 존재했고, 내부 지침이나 가이드 내용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는 경험과 역량이 쌓인 사람의 판단이 필요했다. 조직이 작을 때는, 이렇게 숙련된 감각과 체화된 노하우를 구성원끼리 긴밀하게 일하며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종류와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쉬운정보 제작을 위한 우리의 자산이 조직의 안팎에서 더 효과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암묵지로 존재하던 기준을 고도화해야 했다.
체화된 기준을 언어로 쉬운정보는 어려운 단어를 바꾸거나 문장을 짧게 만드는 일로 이해되기 쉽다. 번역이나 요약처럼 원문의 표현을 간단히 바꾸는 작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쉬운정보는 문장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 같은 언어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정보에 접근하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활용 하는 과정까지 고려하는 일이다. 이러한 차이는 소소한소통이 생각하는 쉬운정보와 외부에서 생각하는 쉬운정보 사이에도 드러나고, 숙련된 제작자와 초보 제작자의 관점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그동안 우리는 내외부 교육이나 제작과정에서 이러한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거나 사례를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접근해왔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제작법 이전에 특정 정보 유형이나 제작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경우와 현장에서 공통으로 참고할 수 있는 관점과 판단 기준이 분명히 존재했다. 이 기준은 쉬운정보가 어떤 상태를 충족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틀이다. 다만 그 기준이 흩어져있거나 아직 언어화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AI의 확산으로 흩어진 기준을 모으고 언어화하는 것의 필요성은 더 선명해졌다. 이제는 누구나 생성형 AI를 활용해 어려운 문장을 몇 초 만에 바꿀 수 있고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쉬운 글도 빠르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AI가 바꾼 글 그대로를 쉬운정보로 인정하기는 섣부르다. 완성된 글을 사용할 사람이 AI가 만든 글이 정말 쉬운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 판단을 위해서는 무엇이 쉬운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이러한 판단 기준을 토대로 검증된 ‘진짜’ 쉬운정보를 더 많은 곳에 확산하려면, 소수의 숙련자가 가진 체화한 감각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판단해왔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소소한소통이 이미 체화했던 ‘기준’을 꺼내야 했다.
쉬운정보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이러한 필요에 따라 쉬운정보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이드라인은 ‘무엇이 쉬운정보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는 문서다. 제작 노하우나 사례를 상세히 담는 것이 아니라 쉬운정보라 부르기 위해 최소한 갖추어야 할 기준을 선언적이면서도 실행 가능한 언어로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둔다. 외부에는 8월 중 공개할 계획이다. 국내에는 아직 이러한 기준이 없다. 참정권, 법률 등 일부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만든 지침은 있었지만, 특정 목적에 따라 분절적으로 다뤄져 여러 분야에 통용되거나 법적·제도적 근거를 가진 평가 기준은 마련된 적이 없다. 이지 리드(Easy Read), 플레인 랭귀지(Plain Laguage) 등 관련 해외 연구와 안내서, 가이드는 이미 여러 가지로 존재하지만 대부분 영어, 영어권 문화에서 나온 것으로 국내 실정과는 거리가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소소한소통 한 조직의 매뉴얼을 정리하는 일을 넘어, 이 공백을 처음으로 채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 쌓여 온 암묵지를 개개인에게서 꺼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특히 쉬운정보를 만들며 쌓아온 경험과 실전 기술을 하나씩 펼쳐놓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판단의 이유를 찾아 공통의 기준으로 묶는 일은 쉽지 않았다. 너무 구체적인 방법에 머물면 또 하나의 실무 매뉴얼이 되고, 원칙만 제시하면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선언에 그칠 수 있었다. 원칙의 방향성과 현장의 구체성 사이에서 적절한 수준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또 대상과 목적, 매체와 사용 상황에 따라 고려하는 다양한 세부 기준을 통합하고 여러 정보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세우는 것도 필요했다. 이 작업은 오래 해온 사람에게는 당연했던 이 판단들을, 처음부터 다시 묻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왜 이것을 쉽다고 말하는가? 왜 이렇게 쓰고 만들어 왔는가. 질문을 계속 따라가며 그 판단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관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문장의 길이, 사용 어휘의 수준처럼 구체적인 제작 방법을 수치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공통의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했다. 같은 길이의 문장이나 같은 수준의 어휘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이해의 어려움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치는 일정한 점검 기준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정보가 실제로 쉬운지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한편 문해수준이라는 하나의 지표로 쉬운정보의 기준을 정리하는 방식에서도 한계를 발견했다. 정보 이용에는 개인의 읽기 능력뿐 아니라 정보를 사용하는 환경, 문화적 맥락, 관련 경험, 배경지식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칼럼에서 여러 번 밝혀왔듯, 소소한소통은 언어뿐 아니라 정보의 구조와 시각적 구성, 사용 상황과 이용자의 경험까지 다각도로 살피며 쉬운정보를 만들어왔다. 이는 쉬운정보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자, 그 판단을 하나의 기준으로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사용자가 어떻게 하면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사용자가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은 무엇인가’를 향한 것이다. 문장, 정보 구조, 시각적 구성처럼 제작 영역을 먼저 나누고 각각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기보다, 그 모든 판단을 정보 이용의 장벽을 발견하고 줄인다는 하나의 관점 안에서 연결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이드라인은 크게 세 가지 관점을 중심으로 쓰였다. 첫째는 ‘장벽 기반 접근’이다. 정보가 이해되지 않는 원인을 사용자의 능력 부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설계하고 제공하는 과정에 어떤 장벽이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둘째는 ‘사용자 중심성’이다. 모든 기준은 사용자의 특성과 상황, 이해 수준을 우선하여 판단한다. 셋째는 ‘근거 기반성과 검증 가능성’이다. 어떤 기준도 감각이나 관행만으로 제시하지 않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근거를 밝히며 사용자 감수를 비롯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이번 작업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원칙이라기보다, 우리가 오랫동안 쉬운정보를 만들며 적용해온 판단 방식에 뒤늦게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깝다. 쉬운정보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을 밖으로 꺼내고, 흩어진 경험을 연결하고, 익숙한 판단의 이유를 다시 묻고, 더 많은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는 과정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쉬운정보란 무엇인가?" 그렇다고 우리가 만든 정의와 기준이 쉬운정보에 대한 최종 답이 될 수는 없다. 새로운 정보 유형과 기술이 등장하고, 정보를 이용하는 환경도 계속 달라진다. 현장에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기준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문제도 생길 것이다. 다만 경험이 많은 몇 사람만 좋은 쉬운정보를 만들 수 있다면, 쉬운정보가 필요한 수많은 현장에 닿기 어렵다. 판단의 근거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더 많은 기관과 제작자가 쉬운정보를 이해하고 시도할 수 있다. 서로의 결과를 검토하고 새로운 사례와 경험을 더하며 기준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곧 공개될 가이드라인은 쉬운정보에 대한 정의를 닫는 문서가 아니라 여는 문서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언어로 옮긴 것은 첫 번째 버전일 뿐이다. 앞으로 정보 사용자가 겪는 새로운 현실에 마주할 때마다 이 정의는 다시 고쳐 쓰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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